신혼여행으로 유럽 크루즈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한 번의 여행으로 여러 도시를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었다. 우리가 탑승할 로얄 캐리비안의 그리스 제도(Greek Isles) 7일 크루즈는 산토리니, 미코노스, 터키 쿠샤다시(에페소), 이탈리아 나폴리를 거쳐 다시 로마로 돌아오는 일정이었고, 도시마다 분위기와 매력이 워낙 달라서 기대가 컸다.
하지만 기대만큼 고민도 많았다. 크루즈 여행은 일정이 정해져 있는 만큼, 어떤 도시를 얼마만큼 볼 수 있을지, 그 안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포기해야 할지를 계획에 따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히 기항지 일정은 말 그대로 시간과의 싸움이다. “여기 가볼까?”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하기엔 정박 시간이 너무 짧고, 체력과 예산도 고려해야 할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신혼여행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효율적인 시간 분배와 현명한 선택의 연속인듯 하다. 크루즈가 처음이라 모든 기항지에서 선내 익스커션을 예약하자니 예산이 부담되고, 그렇다고 전부 자유일정으로 가자니 동선이나 다양한 리스크가 걱정됐다. 그래서 결국 도시마다 이동 조건과 특성을 분석하고, 우리에게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하나씩 판단해보기로 했다.
레딧(Reddit), 크루즈크리틱(CruiseCritic) 같은 커뮤니티 후기와 유튜브 브이로그, 블로그, 후기를 수없이 참고했고, ChatGPT와 퍼플렉시티, 제미나이 같은 AI 도구를 통해 동선을 시뮬레이션하고 팩트 체크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이 글은 여행을 떠나기 전, 직접 각 도시의 일정과 기항지 익스커션와 투어 가이드 등을 계획하면서 겪은 고민과 시행착오, 그리고 최종적으로 어떤 선택을 하게 됐는지를 기록한 준비 후기다. 크루즈 여행을 앞두고 같은 고민을 하는 분들에게, 현실적인 참고 자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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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유럽에 더 일찍 도착하기로 했을까?
처음에는 크루즈 일정에 맞춰 유럽에 도착하는 플랜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준비를 하다 보니, 비행기 지연이나 수하물 분실, 날씨 문제 같은 돌발 상황이 생기면 크루즈 자체를 놓칠 수 있다는 리스크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계획을 완전히 바꾸게 됐다. 결국 우리는 크루즈 탑승일보다 며칠 먼저 유럽에 도착해서 이탈리아 도시 몇 군데를 먼저 여행한 뒤, 여유 있게 크루즈에 오르는 방식이 더 안전하고 합리적이라는 판단을 하게 됐다.
마침 로마 직항이나 피렌체 직항보다 더 저렴한 밀라노 도착 항공권과 피렌체행 기차 티켓 조합을 발견했고, 기차로 이동하면서 이탈리아의 예쁜 시골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후기들을 발견해 이 루트로 정하게 됐다. 덕분에 크루즈 탑승 전에 피렌체에서 총 2일, 그리고 로마에서 반나절 일정을 확보할 수 있었고, 크루즈 하선 후에도 로마에서 1.5일을 머무는 일정을 추가로 구성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번 여행은 피렌체 2일, 로마 2일, 크루즈 7일이라는 구성으로 정리되었고, 물리적 여유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안정감까지 얻을 수 있는 탁월한 선택인 것 같다.
각 도시 일정은 어떻게 계획했을까?
피렌체와 로마는 도시 자체가 워낙 풍부한 역사와 예술, 건축으로 가득한 곳이라, 짧은 일정 안에 모든 걸 보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우리는 ‘무조건 다 보기'보다는 우리 취향에 맞는 장소와 경험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계획을 세웠다. 핵심은 단순히 유명 명소를 나열하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실제로 가능한 루트를 짜는 것이었다.
동선 구성하기
우선 일일 동선을 구성할 때는 ‘하루 걷는 시간은 2~3시간 이내, 식사는 별점 높은 맛집에서, 중간중간 젤라토나 로컬 간식 즐기기 또는 뷰 좋은 카페에서 쉬어가기‘라는 기준을 세웠다. 우리는 음식에 진심이기 때문에 식당을 고를 때도 구글 지도(Google Maps),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 더포크(TheFork)의 평점과 후기, 메뉴 구성을 전부 비교했고, 가능하면 더포크를 통해 사전 예약해 할인 혜택까지 챙겼다.
AI로 여행 계획 짜기
루트 전체는 ChatGPT와 제미나이(Gemini)를 활용해 다양한 조건을 제시하고, 여러 가지 버전의 동선 시뮬레이션을 받아보며 비교했다. 실제 걸어야 하는 거리나 소요 시간, 관광지 간의 이동 편의성까지 고려한 시뮬레이션은 생각보다 훨씬 현실적이었다. 최종적으로는 가장 여유 있고 효율적인 루트를 골라 정리했다.
또한 퍼플렉시티(Perplexity)를 통해서는 바티칸 박물관처럼 미리 예약해야 하는 입장권의 가격, 오픈 시간, 휴관일 같은 정보를 빠르게 팩트 체크할 수 있었다. 덕분에 ‘언제 어디를 가야 하는지'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는 못 가는지'까지 미리 파악할 수 있었다.
결국 이렇게 여러 도구를 활용해서 우리가 실제로 소화할 수 있는 루트를 만들었고, 그 덕분에 일정 자체는 타이트하지만 과하게 무리는 없는 형태로 정리할 수 있었다. 시간과 체력을 충분히 나눠 쓰면서도 여행의 밀도를 높이는 방식이었다.
피렌체 일정 (총 2일)
피렌체에서 2일동안 둘러볼 곳은 다음과 같다:
-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 우피치 미술관
- 아르노강 강변 야경 & 미켈란젤로 언덕 뷰포인트
- 올트라르노 지역 골목길 + 타소 광장
- 두오모 광장 전체, 시뇨리아 광장, 베키오 궁전 외관, 로지아 조각상들
- 중앙시장, 멧돼지 동상, 베키오 다리, 공화국 광장
- 산 로렌초 성당 외관
피렌체에서는 우피치 미술관과 아카데미아 미술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고민 끝에 우피치로 결정했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두 곳 모두 들르면 좋겠지만, 일정이 제한돼 있기 때문에 하나만 선택해야 했고, 대부분의 후기에서 ‘하나만 택한다면 우피치가 낫다'라는 의견이 많아 그 판단을 따르기로 했다.
우피치는 르네상스 회화 중심의 방대한 컬렉션이 강점이고, 아카데미아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포함한 조각 작품 위주로 구성돼 있다. ‘회화를 좋아한다면 우피치, 조각에 더 끌린다면 아카데미아'처럼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좋을 것 같다.
우피치 예약은 비교적 어렵지 않았고, 오전 9시 입장 타임으로 예약해 입장 시간에 맞춰 줄을 서기로 했다. 그리고 이후 일정과도 무리 없이 연결되어 시간 안배 측면에서도 만족스럽다.
로마 일정 (총 2일)
로마에서 2일동안 둘러볼 곳은 다음과 같다:
- 트레비 분수 (야경)
- 판테온 (현장 티켓 구매)
- 나보나 광장, 캄포 데 피오리, 스페인 계단
- 콜로세움 외관,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기념관, 캄피돌리오 광장
- 진실의 입 → 트라스테베레 산책
- 바티칸 박물관 → 시스티나 성당 → 성 베드로 대성당
로마 일정은 정말 ‘압축 여행'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릴 만큼 촘촘하게 구성했다. 첫날은 오후에 도착하자마자 트레비 분수와 판테온을 중심으로 동선을 짜고, 크루즈 하선 후에는 아침 일찍 바티칸 투어로 시작해 남은 명소들을 빠르게 돌아보는 방식으로 계획했다.
이 중 가장 신경을 많이 썼고, 동시에 가장 아쉬움이 남았던 부분은 바로 바티칸 박물관 예약이었다. 처음엔 ‘한 달 전쯤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막상 예매를 시도해 보니 이미 매진. 그제야 바티칸 티켓은 두 달치가 한 번에 열리고, 모든 날짜가 금방 마감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당황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바티칸은 뺄까 고민을 했지만, 신랑이 결사반대하며 GetYourGuide를 통해 오디오 가이드 없이 입장만 가능한 티켓을 구했다. 오디오 가이드가 없는 게 좀 아쉽기는 하지만, 대신 우리는 사전 영상을 보거나 오디오 가이드를 따로 준비해 관람하기로 했다.
결론적으로, 로마 일정은 준비 과정에서도 가장 공을 들인 부분 중 하나였다. 보고 싶은 건 많은데, 시간과 체력은 제한적일 때 어떻게 하면 만족도 높은 일정을 만들 수 있을까를 끝까지 고민했다. 실제로 가봐야 얼마나 현실적인 루트인지 알 수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 같아 만족스럽다.
마치며
피렌체와 로마 일정을 계획하면서 느꼈던 건, 시간이 제한된 여행일수록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고, 우리만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해'라는 현실적인 기준과 ‘그래도 이건 꼭 보고 싶어'라는 욕심 사이에서 계속 균형을 잡아가며, 여행의 밀도와 여유 사이의 중간 지점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아직 여행을 떠나지 않았지만, 준비하면서 겪은 수많은 고민과 시뮬레이션, 예약 과정 하나하나가 이미 여행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잘 준비된 여행은 결국 더 자유로운 여행이 된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다음 글에서는 크루즈 여행의 핵심이기도 한, 산토리니, 미코노스, 쿠샤다시(에페소), 나폴리 기항지에 대해 어떻게 조사했고 어떤 기준으로 익스커션 구매 여부를 결정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선내 투어와 외부 예약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상세히 정리해보려고 한다. 계속해서 함께 여행을 준비하는 기분으로 읽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