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여행을 준비하면서, 기항지 일정은 생각보다 더 도시에 따라 접근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크루즈가 머무는 시간은 짧고, 그 안에서 뭘 보고 어떤 방식으로 움직일지를 정해야 하다 보니, 단순히 가고 싶은 곳만 정리하는 식으로는 부족했다.
특히 선내 익스커션으로 해결할지, 외부 투어를 예약할지, 아니면 자유 일정으로도 충분한지를 판단하는 건 기항지마다 조건이 다 달라서 일괄적으로 결정하기 어려웠다. 어떤 곳은 교통이 너무 복잡하고, 어떤 곳은 오히려 자유롭게 걷는 게 더 나은 선택이기도 했고, 또 어떤 곳은 외부 투어가 훨씬 가성비가 좋다는 후기도 많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도시별로 따로 접근하기로 했다. ‘모든 기항지를 선내 투어로 통일하자'거나 ‘다 자유일정으로 하자'는 식이 아니라, 그 도시에서 우리가 가장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기준으로 하나씩 판단해나가는 방식이었다.
이를 위해 레딧, 크루즈크리틱 같은 커뮤니티의 크루즈 후기는 물론이고, 블로그 후기와 유튜브 브이로그도 참고했고, AI 도구도 적극 활용해 교통, 동선, 후기, 티켓 정보까지 꼼꼼히 조사했다.
이번 글에서는 그렇게 조사하고 비교해가며 정리한 산토리니, 미코노스, 쿠사다시, 나폴리의 기항지 계획을 공유해보려고 한다. 아직 여행은 떠나기 전이지만, 같은 고민을 하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정보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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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편: 지중해 크루즈로 허니문 계획하기 (Feat. 그리스 • 이탈리아)
- 2편: 로마·피렌체 2일 안에 알차게! 크루즈 전후 일정 계획하기
- 3편: 신혼여행 크루즈, 우리는 이렇게 최저가로 예약했다
오늘 알아볼 내용
산토리니: 익스커션이 필수였던 이유
산토리니는 크루즈 기항지 중에서도 교통 구조가 가장 복잡한 편이라, 처음부터 자유일정을 고려하기는 어려웠다. 특히 이 도시는 크루즈가 항구에 직접 정박하지 않고 바다 위에 멈춘 뒤, 텐더보트(소형 보트)를 타고 피라(Fira) 아래 항구에 하선하게 된다.
피라 마을까지 올라가는 방법은 세 가지 뿐이다: 케이블카, 도보, 당나귀. 그런데 도보는 돌계단이 가파르고 미끄러워서 여름철에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당나귀는 냄새도 심하고 안전사고 위험이 있다는 후기가 많았다. 실제로 레딧이나 크루즈크리틱 같은 후기 커뮤니티에서는 당나귀에서 떨어지거나 돌계단에서 미끄러져서 다치고 결국 배로 돌아간 사례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나마 현실적인 선택지는 케이블카인데, 문제는 대시 시간이다. 케이블카는 1~2시간은 기본이고, 크루즈가 몰리는 날에는 3시간 이상 줄을 서야 한다는 글도 많았다. The Key를 구매한 승객이라면 선내 하선 순서에서 혜택이 있긴 하지만, 피라에서 배로 복귀할 때는 모두 똑같이 케이블카 줄을 서야 한다. 그래서 내려올 때 대기 시간이 너무 길어 출항 시간에 맞추느라 조급해졌다는 이야기도 여럿 봤다.
게다가 우리가 꼭 가보고 싶었던 이아(Oia) 마을은 교통까지도 문제였다. 피라에서 이아까지 이동은 가능해도, 노을 이후 피라로 돌아오는 시간대에는 버스 배차 간격이 길고 탑승 인원이 몰려 혼잡하고, 서로 타려고 밀치고 밀리는 일도 있었다는 후기가 있었다. 이때 케이블카 줄까지 합쳐지면 노을을 보고 돌아오는 일정 자체가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산토리니에서는 선내 익스커션이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우리가 선택한 건 로얄 캐리비안의 Village of Oia On Your Own이라는 프로그램이다. 텐더보트를 통해 하선한 뒤, 전용 코치버스를 타고 이아 마을까지 바로 이동해 약 90분간 자유 시간을 보내고, 이후 다시 피라로 이동시켜주는 구성이다. 피라에서는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오거나, 자유 시간이 더 필요하면 따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는 방법도 있다.
무엇보다 이 익스커션은 로얄 캐리비안의 공식 투어라 승객을 반드시 기다려주는 상품이라는 점에서 심리적으로도 여유가 있다. 아직 직접 다녀오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알아본 내용을 바탕으로 판단했을 때 산토리니는 기항지 중에서도 익스커션이 거의 필수에 가까운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산토리니에서 둘러볼 곳
이아에서는 자유 시간이 생각보다 넉넉하진 않지만, 핵심만 알차게 둘러볼 수 있는 루트를 미리 정리해두면 짧은 시간에도 만족도가 높을 수 있을 것 같아 아래와 같은 순서로 동선을 구성했다.
- 파란 지붕 교회 (Blue Domed Church): 산토리니 대표 이미지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장소로, 푸른 돔과 하얀 벽, 에게해가 한 프레임에 담기는 뷰를 볼 수 있는 곳이다.
- 비잔틴 성벽 전망대 (Byzantine Castle Ruins): 이아 마을에서 가장 멀리까지 바라볼 수 있는 뷰포인트로, 계단식 건물이 줄지어 늘어선 풍경과 바다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일몰 명소이지만, 대낮에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한다.
- 골목 산책: 이아는 사진을 찍지 않고 걷기만 해도 충분히 예쁜 마을이라고 한다. 분홍 부겐빌레아, 파란 대문, 하얀 벽면, 구불구불한 돌길이 조화를 이루는 골목을 따라 20분 정도 산책할 계획이다. 특히 마토이아니(Matoianni) 거리 주변은 감성적인 쇼윈도와 작은 카페, 포토존이 많다고 한다.
자유시간이 끝나면 코치버스를 타고 피라로 이동한다. 이 구간에서도 마을 풍경과 바다를 보며 산토리니의 분위기를 한번 더 느낄 수 있다.
- 칼데라 뷰 감상: 피라에 도착하면 클리프 위 테라스길을 따라 크루즈 전경과 섬, 바다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칼데라 뷰 산책로가 이어진다.
- 피라 골목길 탐방: 피라도 이아 못지않게 흰 벽과 파란색 지붕, 상점이 이어지는 골목이 아름답다. 계획 없이 천천히 걷다 보면 사진 찍기 좋은 포인트와 젤라토 가게들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이아와 피라 모두 짧은 시간 안에 핵심만 보고 쉬어가는 일정이기 때문에, 미리 구글맵에 포인트를 저장해 두고 이동 동선을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어두는 게 핵심이다. ‘많이 보기'보다 ‘꼭 보기'를 기준으로 동선을 압축한 만큼, 실제로 얼마나 여유 있는지는 직접 가서 천천히 걸으며 확인해볼 예정이다.
미코노스: 도보 여행만으로도 충분한 도시
산토리니와는 달리, 미코노스는 처음부터 자유일정을 염두에 두고 계획을 세운 기항지였다. 후기를 찾아보면 대부분이 ‘그냥 걸으면 된다'는 말로 요약될 만큼, 미코노스 타운 자체가 작고 잘 정돈되어 있어서 도보로도 충분히 핵심 명소를 둘러볼 수 있다는 얘기가 많았다.
우선 크루즈가 미코노스에 정박하면, 항구에서 미코노스타운까지는 도보 이동 또는 수상 택시로 쉽게 접근 가능하다. 우리는 도보로 이동해도 무리가 없는 날씨를 고려해, 굳이 워터 택시를 이용하지 않고 천천히 걸어서 들어가는 루트를 택할 예정이다.
특히 미코노스는 목적지를 정해두기보다는, 골목골목을 천천히 걸으며 분위기를 느끼는 것 자체가 핵심인 도시다. 그래서 이번 일정은 사전 동선을 빡빡하게 짜기보다는, 대표적인 루트만 기준점으로 설정해두고 여유롭게 산책하며 자연스럽게 이어가도록 구성했다.
- 미코노스 풍차 (Kato Mili): 미코노스 타운을 대표하는 포토스팟 중 하나. 항구에서 걸어서 10분 내외 거리이며, 언덕 위에 줄지어 선 하얀 풍차들과 파란 하늘, 바다가 어우러져 가장 미코노스다운 장면을 만들어주는 곳이다.
- 파라포르티아니 교회 (Panagia Paraportiani): 하얀 유기적인 곡선 건축이 인상적인 작은 교회. 시간대에 따라 그림자와 빛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달라서, 오전이나 오후 중 순광일 때 들르면 사진이 훨씬 예쁘게 나온다.
- 리틀 베니스 (Little Venice): 풍차에서 내려와 바닷가를 따라 걷다 보면 나오는 미코노스의 하이라이트. 바로 바다 옆에 건물들이 줄지어 있고, 테라스에 앉아 에게해를 바로 바라볼 수 있어 뷰가 가장 탁 트인 구간이다. 이 주변에서 커피 한 잔 하거나 젤라토를 먹으며 여유를 부릴 계획이다.
- 미코노스타운 골목 산책: 정해진 루트 없이, 하얀 골목 사이를 무작장 걸으며 감성적인 상점과 기념품 가게, 뷰 좋은 카페를 발견하는 게 이 도시의 진짜 매력이라고 한다. 특히 골목 중간중간 부겐빌레아가 만발한 포인트나 파란 대문이 포인트가 되는 구간은 포토스팟으로도 좋고, 그냥 걷기만 해도 즐겁다.
미코노스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계획 없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기항지'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걸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
에페소: 외부 투어가 정답!
에페소는 부끄럽게도 기독교인인 우리에게조차 조금 낯선 지역이었다. 처음엔 ‘그냥 항구 근처를 자유롭게 둘러보면 되겠지' 싶었는데, 조금 찾아보니 금새 생각이 바뀌었다. 이곳은 단순한 항구 도시가 아니라, 고대 에페소 유적지와 성모 마리아의 집으로 유명한 종교적·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두 장소 모두 입장료가 있고, 특히 에페소 유적지는 규모도 크고 동선도 복잡해서 가이드 없이 보기엔 어렵다는 후기가 많았다. 실제로 ‘바티칸만큼이나 해설이 있어야 진가를 알 수 있는 곳'이라는 말도 있었고, 그냥 걷기만 하면 뭘 본 건지 모른 채 지나치게 될 수도 있다는 얘기에 자유일정에 대한 생각은 빠르게 접게 되었다.
그래서 처음엔 선내 익스커션을 고려했다. 그런데 익스커션이 늘 그렇듯이 할인을 해도 가격이 꽤 높았고, 일정 대비 가성비가 그리 좋지 않아 보였다. 그 즈음 레딧이나 블로그 후기들을 살펴보니, 에페소만큼은 선내보다 외부 투어가 훨씬 낫다는 공통된 의견이 보였다. 가격은 더 저렴하고, 현지 가이드의 퀄리티도 더 높다는 평가들이었다.
그래서 바티칸 티켓을 구매했던 겟유어가이드(GetYourGuide)에서 에페소 투어를 먼저 찾아보기 시작했다. 마이리얼트립도 함께 검색해봤지만, 이 지역은 한국인들에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곳인지 후기가 거의 없어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다.
겟유어가이드에서 처음 눈에 들어온 상품은 리뷰도 많고 평점도 높아 신뢰가 갔지만, 입장권까지 포함하면 가격이 200달러를 훌쩍 넘는 투어였다. 구성은 훌륭해 보였지만, 금액이 부담스러워 망설이던 중 신랑이 정말 기가 막힌 딜을 하나 찾아냈다. 입장권 + 전용 차량 + 프라이빗 가이드까지 포함된 구성인데도 훨씬 저렴한 가격이었고, 이쯤 되니 진지하게 ‘여행사를 차려야 하는 거 아니야?' 싶은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예약한 외부 투어는 총 4.5시간짜리 코스로, 구성은 다음과 같다:
- 에페소 유적지 (약 2시간):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도시 유적을 직접 걸으며 둘러보는 구간. 도시 구조, 극장, 공공 도서관, 시장 터 등 볼거리가 다양하다.
- 성모 마리아의 집 (약 45분): 성모 마리아가 생애 마지막을 보냈다고 전해지는 장소로,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성소. 500 터키 리라(약 12.5유로)를 내면 내부도 관람 가능하다.
- 아르테미스 신전 터 (약 20분):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손꼽히던 신전. 지금은 대부분이 폐허지만, 역사적으로는 매우 의미 있는 장소다.
아직 다녀오진 않았지만, 에페소는 ‘가이드 없이 보면 안 되겠구나' 싶은 기항지였다. 단순한 ‘관광지'라기보다는, 배경과 맥락을 알고 접근해야 비로소 감동이 생기는 유적지라는 느낌을 크게 받았다. 짧은 시간 안에 고대 문명, 성모 마리아, 그리고 그리스 신화까지 한꺼번에 연결되는 여정이라 그런지, 지금도 이 일정은 유독 더 기대가 크다.
나폴리: 걷기만 해도 좋은 도시
마지막 기항지는 나폴리. 처음부터 익스커션 없이도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곳이다. 후기를 봐도 대부분 ‘그냥 걸으면 된다'는 반응이 많았고, 실제로 크루즈 항구에서 구시가지까지 도보로 10분이면 충분하다는 말이 많았다. 그래서 로마나 피렌체처럼, 나폴리에서도 명소 몇 군데를 골라 짧고 알차게 돌아볼 수 있는 방식으로 일정을 구성했다.
너무 욕심내지 않고, 이 나폴리의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루트를 고민했고, 시간의 흐름과 동선을 고려해 다음 장소들을 천천히 걸으며 둘러보기로 했다.
- 산타 키아라 수도원 (Chiostro di Santa Chiara) 정갈한 회랑 정원과 화려한 세라믹 타일 기둥이 인상적인 고요한 공간. 입장료는 €6이며, 여행의 시작을 차분하게 열기에 좋은 장소다.
- 산 그레고리오 아르메노 (San Gregorio Armeno) 거리 크리스마스 장식과 수공예 미니어처 상점들이 가득한 골목길. 기념품 구경도 하고, 사진 찍기에도 좋은 감성적인 거리다.
- 나폴리 대성당 (Duomo di San Gennaro) 웅장한 고딕 양식과 아름다운 천장화, 성인의 유물이 전시된 공간. 조용히 앉아 내부를 감상하거나 기도하며 잠시 쉬어가기 좋다.
- 스파카나폴리 산책 (Spaccanapoli) 나폴리를 가로지르는 가장 나폴리다운 거리. 현지 상점, 스트리트 뮤직, 로컬 분위기를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산책이 될 것이다.
- 누오보 성 (Castel Nuovo) 중세 고딕 양식의 성채. 외관만 둘러봐도 좋고, 시간이 허락되면 €6의 입장료로 내부까지 짧게 둘러볼 수도 있다.
마치며
이번 크루즈 여행은 단순히 여러 도시를 둘러보는 일정이 아니라, 한정된 시간 안에서 진짜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어떻게 고르고, 어떤 순간에 집중할지를 고민하는 과정이었다. 기항지마다 조건과 상황이 달라서, 어떤 곳은 선내 익스커션이 더 안전하고 효율적이었고, 어떤 곳은 자유 일정으로도 충분했다. 그래서 더더욱 도시별로 기준을 달리해가며 하나하나 직접 판단해나가는 시간 자체가 여행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아직 여행을 떠나기 전이지만, 이렇게 준비하면서 이미 많은 걸 배우고 경험하고 있는 기분이다. 단순히 ‘어디를 갈까'를 정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움직일까', ‘무엇을 놓치지 말아야 할까', ‘우리에겐 어떤 여행이 맞을까'를 고민하면서 조금씩 여행이 우리만의 방식으로 완성되어가는 느낌이 든다.
이 글이 크루즈 여행을 준비 중이거나, 기항지를 앞두고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께 작은 힌트와 방향이 되어주는 글이 되길 바란다.